"7.01 kg"

14.12.18 ▶ 14. 12. 28


7.01kg은 어떤 무게일까? 많이 무겁진 않지만 막상 들려고 하면 쉽지 않은 정도. 이번 전시도 딱 그 정도의 무게인 듯하다. 우연한 계기로 문래동에 오게 되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우리에게 문래동은 많은 기회를 주었고 멀기만 했던 7.01km라는 거리는 점점 짧아져 갔다. 그 안에서 7명 작가의 이야기를 뭉쳐보았다. 각자의 생각, 고민, 경험. 정답이 없는 문제들이기에 틀릴 것은 없다. 그럼에도 너무 무거울 것 같으면 조금 덜고, 가벼울 것 같으면 살을 붙였다. 함께 만들고자 했던 목표량이 있었기 때문에.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마음으로 전시를 보길 바란다.

What kind of weight will 7.01kg be? Not so heavy, but bothersome to lift. This upcoming exhibition is about that weight as well. We came to Mullae-dong by chance. This place gave many opportunities to us who did not know what to do, and the long 7.01kg distance soon felt shorter. 7 artists have gathered to share their stories. Their thoughts, worries, and experiences have no error because they serve no answers. Still, we reduced it if it were too heavy, and added if it were too light- since we had our desired aim to make together. We hope you to see the exhibition in the feelings neither heavy, nor light.​

 

1_ 사용할 수 없는 덩어리 / 신정훈

 

컴퓨터를 구성하는 수많은 전자 기판은 각각의 사용 목적이 있다. 사용 목적에 따라 전자 기판의 설계가 다르며 크기, 색상 또한 다르다. 

​각각의 목적에 따라 사용된 전자 기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마모되고 녹슬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재활용이 끝난 전자 기판은 하나의 덩어리로 남게 된다. 이러한 덩어리는 아무런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며 어떠한 사용 목적도 찾을 수 없다. 나는 이러한 덩어리를 수집하여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빛은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그림자는 덩어리가 이전에 만들어내지 못했던 모양으로 벽에 드리웠다. 이제 덩어리는 벽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제 덩어리는 더 이상 벽에 그림자를 드리울 수 없을 때까지 의미를 지닌 채 기능수행을 할 것이다. 또다시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을 정도로 쓸모없어진다면, 다시 또 하나의 큰 덩어리로 의미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2_ 흘러내린 이야기 / 김찬규

 

살면서 느끼게 되는 여러 가지 감정들, 혹은 그에 상응하는 어떠한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섞이게 되고, 쌓이게 되어 종래에는 특정한 한 가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뒤엉켜 버리게 된 '무엇'은 시답잖은 일들을 계기로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공백들, 혹은 작음 틈새들 사이로 흘러나오게 된다.

한때는 사랑이나 행복, 혹은 자유와 같이 거창하고도 이상적인 개념들을 희망했었지만, 그러한 개념들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혹은 존재하더라도 내게는 허락되지 않음을 깨닫게 된 후부터 내가 원했던 유일한 것은 그저 내가 '나'이기를 희망했을 뿐이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음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나는 이번 7.01kg 전시에서 녹아내리고, 흘러내리고, 쌓이고, 굳고, 뒤엉키는 석고의 성질을 활용하여 내가 느끼는 대단찮은 감정들과 변변찮은 이야기들을 표현해 보기 위해 노력해 보았다.

3_ 작은 것들의 여정 / 김재연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씨앗의 여정처럼 여행을 나섰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가량 걸을 때면 나도 그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움직임을 기록하려고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기록하기에는 너무 큰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작은 것들이 되어보기로 했다. 매번 다른 경로로 발이 닿는 대로 걸었고, 만나는 이들을 봉투에 담았다.

작업은 대전 하기동과 서울 흑석동에서 진행했다. 내가 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작업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기동은 대전에서도 덜 개발된 지역이다 보니 산과 들이 많고 한적하다. 자연스레 내 걸음도 느려졌고 더 오래 차분한 마음으로 걸을 수 있었다. 볼 수 있는 것이 많아졌고 작업의 70% 이상을 하기동에서 모을 수 있었다. 반면 흑석동은 개발과 재개발로 뒤섞인, 좁고 가파른 산동네이다. (내가 느끼기에) 서울 어디나 그렇듯 매연과 소음이 심했고, 대부분 사람들은 바쁘게 걸었다. 덩달아 내 걸음도 급해졌고 지나치는 것들이 많아졌다. 서울에서 느리게 걷기란 쉽지 않았다.

4_ 불안의 상자 / 강운​

  

불안은 일상적인 정서지만 나에게는 좀 다른 의미가 있다. 내 기억 속에 7시는 불안한 시간이다. 어렸을 때 나는 종종 아팠고, 그 시간은 보통 오후 7시였다. 중국은 7시에 저녁 뉴스를 하는데 그때 노을을 보면서 심장이 아팠고 병원에 가야 했던 기억 때문인지 그때 노을과 뉴스 시그널은 불안의 기억이 되었다.

5_ 수줍은 단호함 / 성보라

 

내가 작업을 통해 재현하고 싶어 하는 분명한 세계가 있으나 그것은 비유형적이며 비논리적이다.

때때로 소통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내 것이 유일한 것이기를, 세속적이지 않기를 바란다.

보이는 세계와 살고 있는 세계의 간극은 나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 속에서도 내가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찾으라는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나의 목소리가 커지면 상대방에게 폭력적일 것이고 목소리가 작으면 나의 기척만 느껴질 것이다.

작품을 통해 작업자와 소통이 가능한 것일까. 굳게 다문 입과 팔다리가 없는 형상은 소통의 불가능을 표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가능성의 부재는 작업에 대한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독하고 유약하게 만든다.

6_ 기억의 형태 / 이희승

 

나무상자의 내부는 전면이 거울로 되어있고 회전하는 디스플레이에는 거울 조각들이 놓여있다. 상자 위쪽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빛이 장치 내부의 거울 면과 거울 조각들에 반사되어 나온다. 상자를 놓은 맞은편 벽면을 통해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거울 조각의 그림자와 반사된 빛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내부에서 돌아가고 있는 거울 조각들은 한 장의 사진이 조각난 것이다. 과거 분명한 사실로서의 증거가 파괴되어 흩어진 장면들은 새롭게 재조합 되었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억 속 어떤 장면이 내게서 완전히 사라지길 바란다면 내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때보다 먼 과거로 도망칠 수 없고 이미 일어난 일을 부정한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왜곡되거나 흐려지거나 그렇게 변해간다. 그리고 결국엔 진짜 있었던 일들인지 멋대로 뒤섞인 것인지조차 제대로 구분해 낼 수 없다. 그저 가슴 속 어딘가에 남아있다 라는 느낌만으로 지난 시간들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제대로 남아 있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7_ ... / 김광휘

 

단란주점 간판에 비석의 형태를 결합한 작업이다. 한 면은 흔한 단란주점 간판 디자인으로 하고, 다른 한 면은 단란주점의 상호를 비석처럼 보이도록 나열했다. 단란주점 간판은 주로 적색 계열로서 심플하며 상호만 있고 영업항목이 없다. 그럼에도 에로틱함을 물씬 풍기는데, 그 점이 흥미로웠다. 비석은 외형적으로 간판과 닮아있는데, 본디 어떤 업적을 기리고 영속을 기원하는 것으로 죽음과 연관돼 있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하여 조금 다른 재미를 만들고자 하는 게 이 작업의 취지다.

두개의 심장

​14. 12. 1 ▶ 14. 12. 16

김미진, 김송휘, 선무, 윤해균, 최명, 최진숙, 최창훈, 홍우종, 황호빈, 허광표

조선족이라는 말뜻은 '한족(韓族)'의 북한어이다.한국에서 우리 민족을 한민족이라고 표현하지만 조선에서는 조선족이라고 한다. 중국내 우리 민족들은 북과 같이 조선족이라고 한다.중국당국의 지시대로 중국내 동포들은 조선을 따라 모든것을 같게 하였다. 민족명칭까지 조선을 따르게 되어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조선족 작가와 북한작가 , 한국작가의 그룹전을 소개합니다. 태어난곳은  다르지만 여기 모인 작가들은 한민족 입니다.

​The word "Joseon-jok" is a common term in South Korea, meaning Chinese people of Korean descent or the brothers and sisters in China. This time, we're holding a group exhibition with North Korean, South Korean, and Joseon-jok artists. We bear the same Korean heritage despite our different nationalities.​

 

 

중국에서 조선족이라 불리우는 우리 민족은 중국의 56개 소수 민족 중에 유일하게 모국이(대한민국, 북한) 2곳이나 있는 유일한 민족으로 신장과 티벳을 포함, 중국 정부의 요주의 관리 대상이다. 특히, 동포가 제일 많이 사는 연변 지역은 북한과 국경을 길게 맞대고 있어 이에 불안을 느낀 중국 정부는 60-70년대 산동지역에 사는 한족 인구를 강제 이주시켜 인구 비례를 5 : 5로 맞추어 놓았다. 약 200만 명의 조선족과 약 90만 명의 재일동포가 왜 존재하는지 우리 역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일제의 잔혹한 식민 시대를 거친 우리는 강제로 징용당하거나, 독-립-운-동, 농사지을 땅을 준다는 말에 혹은, 돈을 벌게 해 준다는 꾀임에 일본, 중국, 러시아, 멕시코, 하와이에 걸쳐 뿔뿔히 흩어져 노예처럼 살았다. 이제 3-4세대가 지나 각 나라의 체계와 사상에 적응해 언어를 잃은 이나 이름을 잃은 이도 존재한다. 그들이 무엇이라 불리던(조선족, 조센징, 고려인, 애니깽 등) 그들의 뿌리는 조-선-반-도, 이곳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부모시대 강력한 공산국가인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어와 한글을 배우고 현재, 개방 이후 빠르게 변모하는 중국에 살면서 한국을 자유롭게 오가는 그들은 여전히 2개의 시선을 느끼며 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 TV를 보고, 한국 노래를 부르며 한국 화장품과 한국 옷을 입고 자랐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살갑거나 가깝지 않다. 유일한 탈북 작가인 선무 작가는 이 땅에 정착한 지 10년, 하지만 종종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보면 아직도 2개의 시선 속에 산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본인이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과 이중성, 외부에서 느껴지는 작가 선무와 탈북자라는 이중적 잣대 속에 살고 있다. 전시 참여 작가는 한국, 중국, 북한에서 태어난 우리 민족이라는 동질 D-N-A를 가진 이들이다. 국가와 성장 배경이 많이 다르지만 예술을 통해 같은 문-화-유-전-자를 나누고 소통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