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분수가 경멸을 한다네요

   

   

   

“어둑해지면 그들이 경멸하는 눈빛을 볼 수 있을 거야”

운수가 좋아 양갈비에 양다리 뜯다가 문득 무슨 말인고 하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내 속에서 이해가 됐다. 

   

내 전시제의가 탐탁지 않았던 광휘가 일부러 아는 형이라며 자기 대신 내민 연변 사진작가가 있었는데, 그가 심학철 작가였다. 심학철 작가의 사진은 10여년 동안 모은 고향 연변에 대한 사진이었다. 특별한 날인 듯 한복을 입고 공원으로 마실 나온 여인들, 웃날 들어 볕이 좋은 연변 공원, 집 안에서 예식을 기다리는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와 엄마, 벽지대신 붙은 반나체글래머여성의 사진을 담은 달력이 있는 집 안에서 백일 상 받는 아기, 연변소학교 운동회, 어쩔 수 없는 힘에 이제는 사라진 공원분수 등을 찍은 사진들은 다른 것에는 한 눈을 팔 수 없을 정도였다.

   

훗날에 들은 건 사진을 찍을 당시 연변에서 벌이로 웨딩촬영하며, 바람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밤에는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영화얘기, 작업얘기 사사로운 얘기들을 하며 지내던 시절이라고 한다. 청춘이었겠지. 한국에서의 지금은 용접 일을 하며 당진에서 천안으로 천안에서 안산으로 안산에서 화성으로

 

그가 지쳐보여서 물었다.

왜 한국에 계세요?

그렇게 살면 힘들잖아요?

연변에는 낳은 지 2년 밖에 안 되는 아들과 부모님이 계시잖아요?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처음 낳은 제 살점 때문에 그런 거겠지.

다 마셔버린 맥주잔을 앞에 두고도 코트 단추를 푸는 잊어버린

우리가 손을 맞잡고 앉아서 실컷 웃어 버린다 한들, 

그러니깐 우리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제든 오늘이든 그게 좋지 않더라도 그건 중요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평평하지 않게 지나가는 시간이겠지.

   

한국에서 노동을 하며 서러워하는 힘겨워하는 글들이 연변카페에 매일 업데이트된다. 한탄에 대한 댓글은 대개가 위로의 글이거나 한국인들에 대한 원망의 글들이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댓글은 ‘한국사람들도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 거지요’ 였다.

/ 강수경